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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충전 단자가 바뀐 까닭

by 찬이 2010. 8. 20.
이동성이 좋아서 핸드폰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에 비해 은근히 이동성의 발목을 잡는 것 중의 하나가 충전기라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줄로 압니다. 여행을 가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의 충전기를 사용하려고 하면 젠더가 없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죠. 슬림한 핸드폰을 사서 두꺼운 케이스를 끼우는 것 만큼이나 아이러니한게 커다란 젠더 악세사리를 달고 다녀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핸드폰 젠더가 이것저것 다른게 제조사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벌인 일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제조사도 벌어먹고 살려니 힘들긴 하겠지만, 설마 수십만원짜리 핸드폰 팔면서 몇천원짜리 젠더랑 충전기 팔 생각으로 어댑터 모양을 바꾸기야 하겠습니까.

핸드폰 충전 단자의 변천 과정

우리나라 핸드폰 충전 단자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아주 먼 옛날, 벽돌만한 핸드폰이 나오던 시절부터 2000년 초반까지는 사실상 마땅한 표준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핸드폰을 사용해보신 분은 기억하실겁니다. 다른 제조사 핸드폰의 충전기를 전혀 쓸 수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시에는 통화품질을 가장 우선시하였고 규모가 작은 제조사들도 많았기 때문에, 충전 단자 규격은 그다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핸드폰 이외의 여러 기기들도 제조사별로 충전기가 달랐던 경우가 많았으니 더욱 간과했겠지요.

그러다가, 2002년 4월에 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elecommunication Technology Association, TTA)에 의해서 24핀 규격이 표준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대부분의 핸드폰 충전기에 적용되고 있는 그 표준입니다.

그런데, 핸드폰이 점차 슬림화해지고, 폴더폰이 유행하면서 충전 단자를 위한 큰 공간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국내 24핀 표준이 있었지만, 그것은 권고안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슬림화 경쟁의 산물로 2006년 무렵에 각 제조사별로 슬림형 충전단자의 독자적 규격이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삼성에서는 20핀(지금의 통합 20핀 규격과는 다릅니다), LG는 18핀, 팬텍은 14핀의 단자를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그 중에서 핀수가 가장 많은 삼성의 20핀만 하더라도 표준인 24핀에 비하면 크기가 2/5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야말로 얇고 작은 핸드폰을 추구하던 시장의 요구에 표준이 걸림돌이되어 생겨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표준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하여, 2007년 11월 8일 TTA 관련 단체표준 확정 회의에서 현재의 통합 20핀 단자가 채택됩니다. 기존 1열 24핀의 외부단자를 2열 20핀으로 축소하면서, 폭은 16.3mm → 11.1mm, 두께는 3mm → 2.6mm로 줄어듬과 동시에 충전은 물론 이어폰과 같은 멀티미디어 단자까지 통합되었습니다.

이것이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통합 20핀 단자'입니다.

이미지 출처 : TTA 저널 - 표준화/시험인증 NEWS (2008년 7월)


해외의 상황

해외는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다국적 제조사와 통신사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다양한 충전단자들이 생겨나고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해외에서도 단번에 표준화가 됐을리가 없겠죠. 그래서 2009년 2월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에서 Micro USB 방식의 범용충전기를 채택하였습니다.
GSMA는 이동통신사 연합이기 때문에 국제표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사업자 연합이므로 사실상 GSM 휴대폰계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에 그치지 않고 같은 해 5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ITU-T 통신환경 및 기후변화 연구반(SG5) 회의에서 Micro USB를 표준화로 제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같은해 2009년 10월에 개최된 ITU-T SG5에서 20핀 단자를 제안하게 되었죠.

몇달간의 국제표준 초안 및 회원국 회람 등의 작업을 거친 끝에, 2010년 3월16일  ITU에 의해 GSMA의 Micro USB, 중국의 Mini USB과 더불어 한국의 20핀도 국제표준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Mini USB는 디지털 카메라 등의 소형기기에서 사용하는 USB 단자이고, 그것을 좀 더 소형화한 것이 Micro USB 입니다.

Micro USB나 Mini USB는 USB와 별반 다를게 없죠.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제안한 통합 20핀 표준은 충전 뿐만 아니라, 오디오 및 비디오 출력, 리모콘, 데이터 전송, 배터리 충전완료 표시 등 다양한 통합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젠더 판매가 대기업의 횡포?

올해 초에 한나라당 모 의원께서는 '대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하시면서, 지금까지 9000만개의 젠더가 유통됐고, 시장평균가격 7500원 환산하여 6750억원에 이른다고 하셨더군요.
그러나 그 수량은 지금까지의 젠더 유통량 전체에 대한 것일텐데 그러면 2002년 이후 8년간의 소비량이니 년 평균 1100만개가 좀 넘을테고, 제가 젠더를 구입할때는 3~4천원 전후로 구입했었는데 평균 7500원으로 계산한 가격은 어디 기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엔 2천원도 안되는 젠더들도 많은데 말이죠.
그렇게 계산해보면, 연간 1100만개 x 3~4천원 = 330억~440억 전후가 나오네요. 국내 휴대폰의 절반이상은 삼성제품이죠? 그러면 젠더의 절반도 삼성에서 팔았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삼성은 자체로 판매하는게 아니라, 지정업체 즉 다른 중소기업에서 만듭니다. 그럼 나머지 165억~220억 정도를 엘지, 팬택, KTF Ever, SKY, 하청제조업체, 운송업체, 통신사, 핸드폰 대리점, 쇼핑몰 등에서 나눈 셈이겠습니다.
그 중에서 엘지와 팬택, KTF Ever, SKY는 얼마만큼의 수익을 얻었을까요? 대기업도 잘못하긴 했지만, "6750억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인가라는 점에 대해선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제조원가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게 판매된 것도 사실이고, 새 표준의 충전기 보급이 늦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한 젠더보급이나 새 규격의 충전기 보급에 대기업들이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못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살을 대기업에게로 돌리기만할게 아니라, 그러한 표준화에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이었고 진작에 신경을 썼더라면, 그러한 소비자들의 피해는 애초부터 적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한민국은 잘해오고 있답니다

위에서 보셨다시피, 표준이 없었을 옛날과 핸드폰 슬림화로 인한 1년 반 정도간의 기간을 제외하면, 나름 규격을 따라 제품을 생산해왔고, 그 규격을 제조사가 정한 것도 아닙니다. 요즘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Micro USB가 아닌, 20핀, 24핀 규격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도 제조사의 독단이 아니며, 오히려 Micro USB는 핸드폰 충전단자로서 국제표준이 된지 1년도 안되는 신규 방식입니다.
그에 비하면 인기있는 아이폰이 쓰는 30핀 단자는 국제규격 조차도 아닌 상황입니다. 그러니, 해외에서 사용하는 Micro USB나 30핀 단자를 채택하지 않았었다라고 제조사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유럽에서 쓰고 있다고 하여 국내규격이 아닌 Micro USB를 달아서 나온 제품이 있었다면, 돈독 올랐다고 더 욕을 먹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GSMA에서는 2012년까지 Micro USB만을 단일 국제규격으로 삼기 위해서 노력중이라고 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우리나라의 통합 20핀 규격이 국제규격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오기까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통합 20핀 단자가 국제표준으로 채택될 정도라면, 생각만큼 막무가내로 충전 단자 표준을 이끌어 온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힘있는 윗분들께서 괜히 강바닥에 삽질하지 마시고, 이런 부분들에 좀 더 신경써주시면 좋겠다는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그깟 유럽연합 정도도 못이기고 단일 표준자리를 Micro USB에 내놓게 되는게 아니냐"고 염려하시는 마음에서 불만을 토로하시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핸드폰 충전관련 시장에 혼선이 있어서 불편해하시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저부터도 그러니까요.
하지만, 불편을 호소하고 남탓을 하더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알고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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